속도에 홀려 시작했다가 램(RAM) 귀신과 싸우게 된 나의 크롬 정착기
빠른 게 최고인 줄 알았던 시작, 그리고 크롬
업무를 하다 보면 브라우저 하나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윈도우에 깔려 있는 걸 쓰거나 남들이 좋다는 걸 대충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웹 페이지 로딩 속도가 0.5초만 늦어져도 속이 터지더라고요. 특히 구글 시트나 지라(Jira) 같은 무거운 웹 애플리케이션을 하루 종일 붙들고 있다 보니, ‘제발 좀 빠릿빠릿하게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찾게 된 게 구글 크롬이었습니다.
처음 설치했을 때의 그 깔끔한 디자인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주소창 하나 딱 있고, 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하자마자 모든 게 연동되는 그 느낌. ‘아, 역시 기술의 구글이구나’ 싶었죠. 특히 설치가 필요 없는 포터블(Portable) 버전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외근을 나가거나 다른 공용 PC를 써야 할 때도 내 설정 그대로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처럼 보였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 브라우저 생활이 이렇게 험난한 시행착오의 연속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첫 번째 헛발질: 모든 걸 동기화하려던 욕심
가장 먼저 겪은 실패는 ‘동기화’였습니다. 크롬의 강력한 동기화 기능을 믿고 제 개인 구글 계정과 회사 업무용 계정을 한곳에서 섞어 쓰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죠. 처음에는 북마크가 같이 보이니까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사단이 났습니다. 업무용으로 저장해둔 복잡한 문서 링크들 사이에 개인적으로 즐겨찾기 해둔 쇼핑몰이나 유튜브 채널들이 뒤섞이기 시작한 겁니다.
단순히 지저분해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동 완성 기능이 제 개인적인 검색 기록을 업무 미팅 중에 슬쩍 보여줄 때의 그 서늘함이란… 결국 이걸 정리해보겠다고 수동으로 북마크를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동기화가 실시간으로 되다 보니 회사 PC에서 지운 게 제 휴대폰에서도 사라지고, 집 노트북에서도 사라지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한곳에서 관리하면 편하겠지’라는 제 안일한 판단이 완벽하게 빗나간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중요한 업무 링크들을 다시 복구해야만 했습니다. 기술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독이 된 경우였죠.
두 번째 고비: 확장의 늪에 빠져버린 브라우저
두 번째 실패는 좀 더 기술적인 문제였습니다. 크롬의 강점 중 하나가 ‘확장 프로그램’이잖아요? 업무 효율을 높여보겠다고 온갖 생산성 도구들을 깔기 시작했습니다. 화면 캡처 도구, 광고 차단기, 영문법 교정기, 메모장, 심지어는 ‘크롬을 더 빠르게 만들어준다’는 최적화 도구까지 한 15개 정도 깔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기능이 많아지니 무적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중요한 화상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팬 돌아가는 소리가 제트기 엔진 소리처럼 커지더니 브라우저가 완전히 멈춰버렸습니다. 크롬의 고질적인 문제인 ‘메모리 점유율’이 터진 거였죠. 속도를 높이려고 깔았던 확장 프로그램들이 역설적으로 크롬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고, 웹 페이지 하나 띄우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유불급’이었던 겁니다. 결국 회의 도중에 브라우저를 강제 종료하고 다시 켜는 수모를 겪으면서, 제가 선택했던 그 수많은 확장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제 업무를 방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돌아 돌아 도착한 해결책: 프로필의 분리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완벽한 분리’와 ‘미니멀리즘’이었습니다. 일단 계정을 하나로 합치려던 욕심을 버리고 크롬의 ‘사용자 프로필’ 기능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업무와 일상이 섞여서 집중력은 떨어지고, 브라우저는 무거워져서 자꾸 멈추는 상태였죠. 저는 여기서 ‘계정을 분리하되, 각 프로필마다 필요한 확장 프로그램만 최소한으로 설치하자’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회사용 프로필에는 딱 업무에 필요한 3가지 확장 프로그램만 남기고, 개인용 프로필은 아예 다른 테마 색상을 입혀서 시각적으로도 구분되게 만들었습니다.
실행 과정은 번거로웠습니다. 기존의 북마크를 다 내보내기 해서 계정별로 다시 분류하고, 확장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지우고 다시 세팅하는 데 반나절이 꼬박 걸렸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회사용 프로필을 띄우면 오로지 업무용 즐겨찾기만 보이고, 램 점유율도 예전보다 훨씬 안정화되었습니다. 이제는 미팅 중에 엉뚱한 검색어가 튀어나올까 봐 가슴 졸일 필요도 없고, 브라우저가 갑자기 뻗어버리는 일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물론 창을 두 개 띄워놓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생겼지만, 정신적인 평온함을 얻은 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대가였죠.
그래서 지금은 편해졌을까?
사실 크롬이 정답이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하기 조심스럽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엣지(Edge)를 써보면 확실히 램을 적게 먹고 윈도우랑 더 찰떡궁합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특히 노트북 배터리를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는 크롬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전력을 많이 잡아먹습니다. 반면, 개발자 도구를 써야 하거나 다양한 웹 표준을 가장 완벽하게 지원하는 브라우저를 꼽으라면 결국 다시 크롬으로 손이 갑니다. 호환성 하나만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요.
지금 제 크롬은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구글 시트 몇 개를 띄워놓으면 노트북 팬이 신나게 돌아갑니다. 이건 크롬의 본질적인 한계인지, 아니면 제가 여전히 탭을 20개씩 띄워놓는 습관을 못 버려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도구를 어떻게 길들여서 쓰느냐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습니다. 가끔 특정 사이트에서 폰트가 깨져 보이거나, 업데이트 이후에 잘 쓰던 기능이 위치를 옮겨서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크롬을 떠나지 못하는 건, 아마도 제가 겪었던 그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이 익숙한 세팅을 포기하기 싫어서인 것 같습니다. 결론은 없습니다. 내일 또 새로운 브라우저가 나와서 ‘램을 하나도 안 먹는다’고 광고하면 저는 또 흔들리겠죠. 원래 업무 환경을 만드는 건 끝이 없는 과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