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구독료 대신 선택한 Inkscape, 그 치열하고 삐걱거렸던 보름간의 기록

일단 시작은 가볍게, ‘무료’라는 달콤한 유혹

매달 빠져나가는 어도비 구독료를 볼 때마다 속이 쓰렸습니다. 사실 제가 엄청난 전문가도 아니고, 가끔 로고나 아이콘 만지는 정도인데 매번 그 큰 금액을 지불하는 게 맞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대안을 찾다가 Inkscape를 발견했습니다. 설명만 보면 환상적이었죠. 일러스트레이터나 코렐드로우 같은 유료 프로그램과 경쟁하겠다는 포부도 멋졌고, 무엇보다 오픈 소스라 무료라는 점이 가장 컸습니다.

처음에는 설치조차 귀찮아서 포터블 버전을 다운로드했습니다. USB에 넣어서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게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프로그램을 처음 켰을 때 느낌은 ‘생각보다 깔끔한데?’였습니다. 인터페이스가 고전적인 느낌은 있지만, 정돈된 느낌이라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기본적인 드로잉 도구들이나 텍스트 추가 기능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고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 선택이 완벽한 줄 알았습니다. 고생길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첫 번째 벽: 노드와 사투를 벌이다

본격적으로 간단한 로고를 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원형 툴로 기본 도형을 잡고 경로로 변환한 뒤, 노드를 수정해서 모양을 다듬으려고 했죠. 그런데 여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기술적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쓰던 방식대로 노드를 클릭하고 드래그하는데, 제가 원하는 대로 곡선이 제어가 안 되는 겁니다. 핸들이 나타나는 방식이나 스냅이 걸리는 느낌이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분명히 ‘노드 편집’ 도구를 쓰고 있는데, 어떤 노드는 부드럽게 움직이고 어떤 노드는 딱딱하게 꺾였습니다. 이걸 해결하려고 설정을 뒤져보고 우클릭을 연발했지만, 처음에는 도저히 감이 안 오더군요. 결국 곡선 하나를 제대로 따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냥 다시 어도비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기술적으로 제가 알던 상식과 Inkscape의 로직이 충돌하니 진도가 전혀 안 나갔죠. 결국 튜토리얼 영상을 서너 개나 찾아보고 나서야 노드 타입(심미적, 대칭, 직선 등)이 수동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동화된 도구에 너무 길들여져 있었나 봅니다.

두 번째 벽: 선택의 실패와 되돌아온 길

노드와 어느 정도 친해졌을 무렵, 저는 좀 더 큰 욕심을 냈습니다. 회사에서 쓸 간단한 홍보용 리플릿 레이아웃을 아예 Inkscape로 다 짜보겠다고 결심한 거죠. 텍스트도 많고 비트맵 이미지도 여러 장 들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서 제 두 번째 실수가 터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벡터 그래픽에는 강하지만, 고해상도 비트맵 이미지를 대량으로 관리하고 복잡한 레이아웃을 잡는 데는 다른 툴보다 리소스를 훨씬 많이 잡아먹는다는 걸 간과한 겁니다.

작업 중간쯤 갔을까요? 개체가 수백 개로 늘어나고 그룹화와 Z-순서 조작을 반복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특히 알파 투명도를 적용한 개체들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화면 렌더링이 버벅거리기 시작했죠. ‘이건 내 컴퓨터 문제인가, 프로그램 문제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깨달았습니다. 저는 Inkscape를 인디자인처럼 쓰려고 했던 거예요. 도구의 성격과 맞지 않는 과한 목표를 잡았던 거죠. 결국 며칠간 공들인 레이아웃 작업을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리플릿 전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갈 개별 아이콘과 그래픽 소스만 Inkscape로 만들기로 방향을 완전히 틀었습니다. 도구가 나쁜 게 아니라 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꽤나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막혔던 로고 제작, ‘불린 연산’으로 뚫어내기

아이콘 제작으로 범위를 좁히니 다시 희망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는데, 복잡하게 겹쳐진 도형들을 합치고 빼서 특정 문양을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접 노드를 깎아서 모양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교하게 깎아도 좌우 대칭이 미세하게 어긋나더라고요. 눈으로 보기엔 괜찮은데 확대하면 엉망인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노드 노가다로는 답이 없다. 프로그램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자.’ 그래서 저는 경로(Path) 메뉴에 있는 ‘불린 연산(Boolean Operations)’ 기능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합집합, 차집합, 교집합 기능을 차례대로 테스트해봤습니다. 처음에는 적용이 안 돼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두 개체가 모두 ‘경로’ 상태여야 하고 그룹화가 되어 있으면 안 되더군요.

이걸 확인한 뒤, 모든 도형을 그룹 해제하고 경로로 변환했습니다. 그리고 ‘차집합’ 명령을 실행했죠. 순간, 제가 30분 동안 노드를 잡고 씨름하던 모양이 단 1초 만에 깔끔하게 잘려 나갔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수동으로 깎을 때보다 훨씬 정교하고 수학적으로 완벽한 대칭이 구현되더군요. 실행 과정은 번거로웠지만, 한 번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Inkscape의 진가는 이렇게 사용자가 직접 도구의 로직을 파헤칠 때 드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쓰다 보니 느껴지는 것들: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한 끗 차이

이제는 어느 정도 손에 익었습니다. Inkscape와 일러스트레이터를 비교해보자면, 확실히 편의성 면에서는 유료 프로그램이 압승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이게 되겠지?’ 하면 되는 경우가 많은데, Inkscape는 ‘이게 왜 안 되지?’ 하고 찾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대시 선이나 그라디언트 편집기는 처음 접할 때 꽤나 불친절하게 느껴집니다. 패턴 채우기도 미리보기 기능이 좀 약해서 여러 번 시도해봐야 하죠.

하지만 반대로 SVG 파일을 다룰 때의 정교함이나 명령줄 옵션을 통한 확장성은 Inkscape가 훨씬 강력하다고 느꼈습니다. 웹 그래픽을 주로 다루는 입장에서는 굳이 무거운 유료 프로그램을 띄우지 않아도 가벼운 포터블 버전으로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알파 투명도를 자유롭게 조작하고 클론(Clone) 기능을 써서 여러 개체를 동시에 수정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다만 인쇄물 작업, 특히 CMYK 색상 관리가 중요한 작업에서는 여전히 불편함이 큽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최고의 가성비 툴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스트레스 유발자가 되기도 합니다.

아직은 진행형인 적응기

결론을 내리자면, Inkscape는 결코 만만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쓸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보름 동안 삽질을 반복하며 느낀 건,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사용자가 맞춰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복제나 변형 기능은 정말 풍부하지만, 그것을 꺼내 쓰는 과정이 조금 투박할 뿐이죠.

지금 제 로고 작업은 90% 정도 끝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효과를 줄 때마다 검색창을 띄워야 하고, 가끔 이유 없이 프로그램이 꺼질까 봐 수시로 저장 버튼을 누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성능 문제나 인터페이스의 이질감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다시 유료 툴을 결제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료 툴이라 기능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조금은 불편하고 가끔은 화가 나지만, 나만의 도구로 길들여가는 재미가 있는 묘한 매력의 프로그램인 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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